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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의 어느 추운 새벽. 핸드폰이 울렸다. 새벽 1시 15분. 화면에 뜬 이름을 보자 바로 전화를 받았다.
"최 사장님?"
"실장님... 지금 가도 될까요?"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3년째 우리 가게를 찾아주시는 단골 손님. 항상 저녁 8시 정각에 오시던 분이 새벽에 전화를 주신 건 처음이었다.
"당연히 오세요. 평소 드시던 발렌타인 30년 준비해놓겠습니다."
새벽의 전화 한 통
빈 가게 그리고 기다림
새벽 1시 30분. 대부분의 손님이 돌아가고 조용해진 가게. 직원들에게 먼저 퇴근하라고 했다. 오늘은 최 사장님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았다.
303호실을 준비했다. 최 사장님이 가장 좋아하는 방. 창밖으로 강남의 야경이 보이는 곳이다. 위스키를 준비하고 얼음을 채우고 안주를 간단히 세팅했다.
1시 45분.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나가니 최 사장님이 서 있었다. 평소의 단정한 모습과 달리 넥타이도 없고 머리도 헝클어져 있었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새벽에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을... 들어가시죠."
침묵 그리고 눈물
룸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평소라면 바로 건배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을 텐데 최 사장님은 말없이 잔만 만지작거렸다.
10분쯤 지났을까. 최 사장님이 입을 열었다.
"실장님 제 친구 아시죠? 김 전무요."
"네 작년에 같이 오셨던 분이요? 목소리 크시고 유쾌하신 분."
"네... 그 친구가..."
말을 잇지 못했다. 눈가가 붉어지더니 이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52살 중견기업 대표. 평소 강하고 카리스마 있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방금 병원에서 왔어요. 간암 말기래요. 길어야 3개월이라고..."

40년 우정의 시작과 끝
초등학교부터 함께한 인연
최 사장님과 김 전무님의 인연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같은 동네 같은 학교 심지어 같은 반.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줄곧 함께였다.
"그 녀석이 없었으면 전 지금 여기 없었을 거예요."
고등학교 때 최 사장님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야반도주했다. 하루아침에 거지가 된 최 사장님. 학교도 그만둬야 할 상황이었다.
"김 전무가 자기 부모님을 설득해서 저희 집 월세를 대줬어요. 자기 학원비 빼서 제 교재비 사주고..."
대학도 함께 갔다. 군대도 같은 날 입대했다. 제대 후 김 전무는 대기업에 최 사장님은 작은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10년 전 제가 독립할 때도 김 전무가 퇴직금 깨서 투자해줬어요. 그 돈으로 지금 회사를 만들었죠."
마지막 술자리의 추억
작년 여름의 기억
작년 여름 두 분이 함께 우리 가게를 찾았던 날이 떠올랐다.
김 전무님은 정말 유쾌한 분이었다. 노래도 잘 부르시고 농담도 잘하시고. 특히 최 사장님을 놀리는 게 일품이었다.
"야 최 사장! 네가 사장이 되다니 세상 참 불공평해!"
그러면서도 자랑스러워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날 두 분은 새벽 4시까지 있었다. 학창시절 이야기 군대 이야기 연애 이야기... 마치 열여덟 살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떠나시면서 김 전무님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실장님 이 친구 잘 좀 봐주세요. 겉으론 강해 보여도 여린 놈이에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오늘 병원에서 그 녀석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최 사장님이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미안하대요.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그 말에 최 사장님은 결국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미안할 게 뭐가 있어... 내가 더 고마운데... 평생 신세만 졌는데..."
나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있었다. 때로는 위로의 말보다 침묵이 더 큰 위안이 될 때가 있다.
유흥업소가 품은 인간의 이야기
유흥업소라는 공간의 의미
사람들은 유흥업소를 어떻게 생각할까. 술 마시고 여자 만나고 돈 쓰는 곳?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곳은 때로 누군가의 피난처가 된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보일 수 없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곳. 강한 척하지 않아도 되는 곳. 울어도 되는 곳.
3년간 최 사장님을 지켜봤다.
사업이 잘될 때는 기쁨을 나누러 왔고 힘들 때는 위안을 받으러 왔다. 아들 대학 합격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셨고 부인과 싸웠을 때는 하소연을 하러 오셨다.
나는 그저 들어드렸다. 때론 공감하고 때론 조언하고 때론 침묵했다.
그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했다. 술을 파는 것보다 더 중요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

새벽의 대화
"실장님은 친구가 많으세요?"
갑자기 최 사장님이 물었다.
"글쎄요... 일하다 보니 진짜 친구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친구 만드세요. 꼭. 나이 들수록 친구가 중요해요."
최 사장님은 김 전무님과의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놓기 시작했다.
첫사랑을 고백하러 갈 때 함께 가줬던 일.
대학 시험 때 밤새 같이 공부했던 일.
첫 월급 타고 함께 여행 갔던 일.
서로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던 일.
아이들 돌잔치에서 함께 술 마셨던 일.
"40년이에요. 40년을 함께 살았는데..."
떠나는 이와 남는 이를 위한 공간
위로할 수 없는 아픔 그리고 그 후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힘내세요"라고? 너무 가볍다.
"다 잘될 거예요"라고? 거짓말이다.
"시간이 약이에요"라고? 너무 뻔하다.
그래서 그냥 물었다.
"김 전무님 좋아하시는 술이 뭐예요?"
"그 친구요? 맥주요. 고급 술은 입에도 안 대고 맨날 맥주만 마셔요."
"다음에 오실 때 김 전무님 몫으로 맥주 준비해놓을게요."
최 사장님이 처음으로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요... 그 친구 데리고 한 번 더 올게요. 살아있는 동안..."
새벽 4시가 되었다. 최 사장님은 많이 취했지만 가시려고 했다.
"아침에 병원 가봐야 해요."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아니에요. 택시 타고 갈게요."
가게 입구까지 배웅했다. 택시를 잡아드리며 말했다.
"사장님 언제든 오세요. 꼭 술 마시러가 아니어도 좋으니... 그냥 이야기하러 오셔도 돼요."
최 사장님이 내 손을 꽉 잡았다.
"고마워요 실장님. 오늘... 정말 고마워요."
영업실장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김 전무님은 예상보다 빨리 세상을 떠났다. 2개월 후였다.
최 사장님은 장례식 다음 날 우리 가게를 찾았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김 전무님 부인과 아들이 함께였다.
"남편이 여기 정말 좋아했다고 들었어요. 한번 와보고 싶었어요."
303호실에서 우리는 김 전무님을 추억했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떠나시면서 김 전무님 부인이 말했다.
"남편이 항상 말했어요. 최 사장이 힘들 때 갈 곳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실장님 덕분에 친구가 외롭지 않았대요."
이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봤다.
성공한 사업가가 파산하는 모습.
행복한 가장이 이혼하는 모습.
건강한 사람이 병드는 모습.
그리고 친구를 잃고 우는 모습.
우리는 그들의 인생에서 작은 부분일 뿐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작은 부분이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단순히 술을 팔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도피처이고
누군가에겐 놀이터이고
누군가에겐 상담소이고
누군가에겐 안식처다.

마치며
최 사장님은 여전히 우리 가게를 찾는다. 예전처럼 8시 정각에.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항상 맥주를 한 병 시킨다는 것. 마시지도 않는 맥주를.
"김 전무 몫이에요."
그리고 가끔 정말 가끔 김 전무님 이야기를 한다. 이제는 울지 않고.
어제도 최 사장님이 다녀가셨다. 떠나시면서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실장님 제가 먼저 가게 되면... 여기 와도 되죠?"
"당연하죠. 맥주 좋아하는 친구분이랑 같이 오세요."
우리 모두는 언젠가 떠난다. 하지만 떠나기 전까지 우리는 살아간다. 울고 웃으며 만나고 헤어지며.
그리고 나는 오늘도 여기 있다.
누군가의 기쁨을 축하하고
누군가의 슬픔을 위로하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런 사람으로.
오늘도 8시가 되면 문을 연다.
누군가는 기쁜 마음으로
누군가는 무거운 마음으로 찾아올 것이다.
나는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술과 안주뿐 아니라
따뜻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