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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10시 강남의 한 룸살롱 대기실. 평소라면 50명은 넘어야 할 매니저들이 고작 20명뿐이다. 마담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또 3명이 그만뒀어. 코인으로 대박 났다나 봐."
웃지 못할 현실이다. 2024년 말부터 시작된 암호화폐 광풍이 유흥업계를 강타했다. 비트코인이 1억 5천만 원을 돌파하면서 밤의 일꾼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코인 열풍에 휩쓸린 강남 유흥가
사라진 그녀들 그리고 남은 이들
내가 영업실장으로 일하는 이곳도 상황은 비슷하다. 작년 이맘때 80명이던 매니저가 지금은 45명. 거의 절반이 줄었다.
"언니 나 이제 안 나와. 코인으로 먹고살 거야."
23살 지은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그녀는 도지코인으로 3억을 벌었다고 자랑했다. 정확히 42일 전의 일이다.
그런데 어제 지은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
목소리가 떨렸다.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선물거래로 다 날렸구나.
1억 5천만 원의 비트코인 그리고 욕망
솔직히 나도 후회한다. 2017년 비트코인이 2천만 원일 때 주변에서 다들 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거 도박이야"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금? 1억 5천만 원이다. 그때 샀다면 7.5배. 1천만 원만 투자했어도 7천5백만 원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후회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다음 기회는 놓치지 않겠다'는 집착. 그리고 그 집착이 더 큰 구멍으로 이끈다.
업계 사람들이 특히 취약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이미 '한탕주의'에 익숙하다. 하룻밤에 수백만 원이 오가는 것을 일상적으로 본다. 손님 한 명 잘 만나면 팁으로 천만 원도 받는다. 이런 환경에서 "코인으로 10배 수익"이라는 말은 너무나 달콤하게 들린다.

대기실의 변화된 풍경
차트로 뒤덮인 대기실
대기실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예전엔 화장하고 수다 떨고 간식 먹는 공간이었다. 지금은?
"언니 이더리움 지금 사야 돼?"
"XRP 뭐야? 왜 이렇게 올라?"
"선물 숏 포지션 잡았는데 청산당할 것 같아..."
스마트폰 화면엔 온통 차트다. 빨간색 파란색 캔들이 춤을 춘다. 업비트 바이낸스 바이비트... 앱 이름도 다양하다.
28살 민정이는 아예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 듀얼 모니터까지 설치하려다 마담한테 혼났다.
"일하러 온 거야 투자하러 온 거야?"
하지만 마담도 코인한다. 어제는 마담이 먼저 물었다.
"솔라나 전망 어떻게 생각해?"
웨이터들의 코인 중독
매니저만의 문제가 아니다. 웨이터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가게 웨이터 10명 중 8명이 코인을 한다. 그중 5명은 선물거래를 한다.
웨이터장 김 씨는 화장실에서도 차트를 본다. 하루에 100번은 확인하는 것 같다.
"형 일 좀 제대로 해!"
내가 소리쳐도 소용없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캔들 차트뿐이다.
얼마 전 김 씨가 실수로 룸 번호를 잘못 불러서 큰 트러블이 생겼다. 303호 손님 술을 305호에 가져다준 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비트코인이 갑자기 떨어져서..."
어이가 없었다.

선물거래가 가져온 파멸
선물거래라는 지옥문
현물만 했다면 이 정도로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선물거래다.
선물거래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설명하자면 쉽게 말해 '베팅'이다. 오를지 내릴지 맞추는 것. 그런데 레버리지라는 게 있다. 10배 20배 심지어 125배까지.
100만 원으로 1억 2천5백만 원어치 베팅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박이 나면? 하루 만에 천만 원도 가능하다.
망하면? 5분 만에 전 재산이 사라진다.
매니저 혜진의 스토리
26살 혜진이를 처음 본 건 2년 전이다. 성실하고 밝은 성격으로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월 평균 1500만 원은 벌었다.
작년 10월 혜진이가 흥분해서 말했다.
"언니! 나 비트코인 선물로 3천만 원 벌었어!"
시드머니 300만 원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10배 수익. 모두가 부러워했다.
11월 혜진이는 더 크게 베팅했다. 이번엔 3천만 원 전부를 걸었다. 레버리지 50배.
결과? 2시간 만에 청산. 3천만 원이 0원이 되었다.
하지만 혜진이는 멈추지 않았다. 대출을 받았다. 카드론 현금서비스 심지어 사채까지.
12월 혜진이가 사라졌다.
마담을 통해 들은 소식. 총 빚 1억 2천만 원.
지금 혜진이는 지방 공장에서 일한다고 한다. 월급 200만 원으로 빚을 갚으며.
일의 가치를 잃어버린 사람들
코인 시대의 노동 가치
가장 큰 문제는 일에 대한 의욕 상실이다.
"하루 종일 일해서 20만 원 버는데 코인은 클릭 한 번에 200만 원이 왔다갔다해요."
25살 신입 매니저의 하소연이다.
맞는 말이다. 비트코인이 1% 오르면 150만 원이다. 하루 일한 것보다 많다.
이런 경험을 하면 일이 바보같이 느껴진다. 왜 힘들게 일해야 하나? 차트만 잘 보면 되는데?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차트를 '잘' 보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도박꾼일 뿐이다.
텅 빈 대기실의 아이러니
금요일 밤 최고 대목인데 대기실은 텅 비었다.
남은 매니저들도 손님 응대보다 휴대폰이 우선이다.
"언니 비트 떡상!"
"대박 내 숏 포지션..."
손님이 부르는데도 못 들은 척한다. 차트가 더 중요하니까.
이런 분위기에 손님들도 눈치챈다.
"요즘 애들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
"딴생각하는 게 보여."
매출이 떨어진다. 서비스 질이 떨어지니 당연하다.
악순환이다. 매출 떨어지면 → 수입 감소 → 코인에 더 매달림 → 서비스 질 하락 → 매출 감소

현명한 투자와 남은 자의 이야기
그래도 남은 이유
나는 왜 남았을까? 코인 대박의 유혹을 뿌리치고 여전히 새벽까지 일하는 이유는?
첫째 나는 내 능력을 안다. 투자 천재가 아니다. 운으로 한두 번은 벌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둘째 안정적 수입의 가치를 안다. 매달 확실하게 들어오는 돈. 이것만큼 든든한 게 없다.
셋째 일의 보람이 있다. 손님들과 대화하고 직원들을 관리하고 가게를 운영하는 것. 힘들지만 나름의 성취감이 있다.
넷째 곁에서 본 실패가 너무 많다. 코인으로 망한 사람들의 비참한 결말. 그것이 나를 깨어있게 한다.
현명한 투자란 무엇인가
투자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현명하게 하라는 것이다.
내가 지키는 원칙:
- 여유자금으로만: 잃어도 생활에 지장 없는 돈
- 현물 위주: 선물거래는 도박
- 분산 투자: 한 곳에 올인하지 않기
- 장기 관점: 단타는 프로나 하는 것
- 본업 우선: 투자는 부수입일 뿐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이다. 본업에 충실한 것.
일을 열심히 해서 번 돈으로 조금씩 투자하는 것. 이것이 정답이다.

돌아오는 그들
"언니 저 다시 일하고 싶어요."
최근 한 달 사이 이런 연락을 5통 받았다.
모두 코인으로 대박 났다며 떠난 이들이다.
평균 복귀 기간: 3개월
다시 돌아온 이유:
- 전 재산 손실: 60%
- 생활고: 25%
- 심리적 압박: 15%
돌아온 그들의 공통점? 선물거래를 했다는 것. 그리고 초반에 맛본 단맛이 독이 되었다는 것.
에필로그: 2025년 대기실 풍경
지금 대기실엔 20명이 앉아 있다.
5명은 화장을 한다. (정상)
3명은 수다를 떤다. (정상)
2명은 간식을 먹는다. (정상)
나머지 10명은? 휴대폰으로 차트를 본다.
이것이 2025년 강남 룸살롱 대기실의 현실이다.
코인 시대 우리 모두가 투자자가 되었다. 하지만 진짜 투자자는 몇 명일까?
이 글을 쓰는 지금 비트코인이 또 올랐다. 1억 5천 5백만 원.
순간 선물거래 앱을 켜고 싶은 충동이 든다. 하지만 참는다.
대신 엑셀을 켠다. 이번 달 매출 정리를 한다. 전년 대비 15% 증가. 나쁘지 않다.
이것이 내 성과다. 화려하지 않지만 확실한.
차트를 보며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보다 묵묵히 일하며 한 달 한 달 쌓아가는 것.
촌스러운가? 그래도 괜찮다.
적어도 나는 오늘도 일하고 월급 받고 저축하고 조금씩 투자한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쓴다. 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나 자신을 다잡으며.
솔직히 말하면 이것도 일종의 자랑이다.
"봐라 나는 유혹을 이겨냈다. 나는 현명했다."
하지만 이런 자랑쯤은 해도 되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내일도 출근할 곳이 있고 받을 월급이 있으니까.
텅 빈 대기실을 보며 생각한다.
과연 그들은 언제 돌아올까?
아니 돌아올 수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