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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10번 출구 근처의 한 카페. 오후 3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부드럽게 들어오는 시간. 32살 지은 씨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3년 전 강남 최고의 텐프로에서 '에이스'로 불렸던 그녀다. 월 3천만 원을 벌던 시절 모두가 부러워했고 그녀 자신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언니 다시 와. 자리 비워놨어."
마담의 전화를 받은 지 일주일째. 그녀는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니 사실 마음은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2021년 겨울 지은 씨가 화류계를 떠날 때 주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왜 그만두냐"는 만류가 쏟아졌다. 당시 그녀는 강남에서 손꼽히는 에이스였다. VIP 손님들이 그녀를 지명했고 다른 업소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끊이지 않았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 싶었어요. 매일 새벽에 들어가서 오후에 일어나는 생활. 돈은 많이 벌었지만 제 삶이 없는 것 같았죠."
그녀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홍대에 네일샵을 차렸다. 평소 네일아트가 취미였고 자격증도 미리 따뒀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3만 명이 넘었으니 손님 걱정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처음 몇 달은 순조로웠다. 개업 이벤트로 손님이 몰렸고 SNS 입소문도 탔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자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월세 300만 원 직원 2명 인건비 500만 원 재료비에 관리비... 남는 게 없었어요. 오히려 마이너스였죠."
네일 한 건에 5만 원을 받아도 하루 10명을 해도 월 1500만 원. 여기서 모든 비용을 빼면 손에 쥐는 건 200만 원도 안 됐다. 화류계에서 하루 벌던 돈을 한 달 내내 일해도 못 버는 현실.
취미와 직업의 차이
화류계를 떠난 여성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직업은 네일샵 피부관리실 필라테스 강사 등이다. 평소 자주 이용하던 서비스이자 관심 있던 분야다. 하지만 고객에서 사업자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필라테스 좋아해서 강사 자격증 따고 스튜디오 차렸는데 완전 다른 세계더라고요. 회원 관리 직원 관리 매출 관리... 운동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29살에 화류계를 떠나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최근 다시 돌아온 수진 씨의 경험담이다.
피부관리실을 운영했던 35살 혜원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손님으로 갈 때는 몰랐는데 막상 운영하니까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에요. 예약 펑크 내는 손님 시술 트집 잡는 손님 환불 요구... 차라리 술 따르는 게 쉬웠어요."
전문가들은 이를 '역할 전환의 어려움'이라고 설명한다.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 제공하는 입장이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경험이라는 것이다.

경제적 현실 그리고 돌아온 그녀들
"처음엔 자존심 상했죠. 다시 돌아간다는 게. 그런데 월세 못 내서 쫓겨날 뻔하니까 자존심이고 뭐고 없더라고요."
최근 복귀를 결정한 31살 민서 씨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녀는 2년 전 결혼을 전제로 화류계를 떠났다. 하지만 결혼은 파토 났고 카페 창업도 실패했다.
통계를 보면 화류계를 떠난 여성의 70% 이상이 3년 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이 화류계에서 벌던 수입을 일반 직장에서 벌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화류계에서 월 2000만 원 벌던 사람이 일반 회사 가면 월 300만 원도 힘들어요. 경력도 인정 안 되고 나이는 있고. 현실적으로 선택지가 많지 않죠."
한 직업상담사의 분석이다. 실제로 화류계 출신 여성들이 일반 기업에 취업하는 비율은 5% 미만이다. 대부분 서비스업 창업을 시도하지만 창업 3년 내 폐업률이 80%를 넘는다.

"오빠 나 기억 안 나? 은지야 은지."
3년 만에 돌아온 은지 씨가 단골 손님에게 건넨 인사. 하지만 손님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사이 새로운 에이스들이 등장했고 손님들의 취향도 바뀌었다.
달라진 풍경과 새로운 경쟁
"예전엔 나이 좀 있어도 매력 있으면 됐는데 요즘은 무조건 어려야 해요. 20대 초반 애들이 너무 많아서..."
실제로 최근 화류계는 극심한 세대교체를 겪고 있다. MZ세대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분위기도 문화도 완전히 달라졌다.
"인스타 팔로워가 몇 명인지 물어봐요. 틱톡 춤 출 줄 아냐고도 하고. 완전 다른 세상이 됐어요." 복귀 6개월 차 현정 씨의 당황스러운 경험이다.
하지만 '에이스'는 다르다. 비록 감은 떨어졌을지 몰라도 손님을 다루는 기술과 대화법 분위기 메이킹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다.
"처음 한두 달은 적응이 안 됐는데 3개월 지나니까 다시 감이 돌아오더라고요. 역시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이 일이구나 싶었죠."
복귀자들의 강점과 전략
복귀자들의 가장 큰 강점은 '경험'이다. 수많은 손님을 상대해본 경험 다양한 상황을 해결해본 노하우는 신입들이 따라올 수 없다.
"신입들은 손님이 조금만 까다로워도 당황해요. 근데 저희는 별의별 손님 다 봤잖아요. 웬만한 건 다 대처 가능하죠."
또 다른 강점은 '인맥'이다. 과거 단골 손님들이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 "○○ 언니 돌아왔다며? 오늘 거기 가자." 입소문이 나면서 매출 회복도 빠르다.
하지만 약점도 명확하다. 첫째는 체력이다. 20대 때와 달리 30대가 되면 밤샘 근무가 확실히 힘들다.
"예전엔 3일 연속 밤새도 괜찮았는데 이제는 하루만 해도 일주일은 회복해야 해요."
둘째는 변화한 문화에 대한 적응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젊은 손님들과 소통하는 것이 쉽지 않다.
"NFT가 뭔지 비트코인이 뭔지 공부해야 해요. 안 그러면 대화가 안 돼요."
성공적인 복귀를 위한 전략으로 복귀에 성공한 이들은 명확한 목표 설정을 강조한다.
"이번엔 3년만 하고 무조건 그만둔다. 10억 모으는 게 목표다.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해요."
변화 수용도 중요하다. 과거의 영광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전 방식 고집하면 안 돼요. 요즘 트렌드 배우고 젊은 애들한테도 배워야 해요."
건강 관리 또한 필수다. 30대의 몸으로 20대와 경쟁하려면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
"PT받고 영양제 먹고 피부 관리하고. 자기 관리 투자를 아끼면 안 돼요."
많은 복귀자들이 '언니 포지션'을 택한다. 어린 손님들에게는 편한 언니 나이 있는 손님들에게는 대화가 통하는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20대 애들이 못하는 게 있어요. 인생 상담 비즈니스 조언 이런 거. 그런 면에서는 우리가 유리하죠."
35살에 복귀한 정희 씨는 오히려 매출이 예전보다 늘었다고 한다. "진중한 대화를 원하는 손님들이 저를 찾아요. 단순히 예쁜 얼굴 보려는 게 아니라."

사회적 시선과 편견
복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것은 주변의 시선이다. 가족과 친구들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부모님한테는 말도 못 했어요. 필라테스 강사 한다고 거짓말하고 있죠."
사회적 편견도 여전하다. 화류계 종사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하지만 이들도 누군가의 딸이고 언니고 친구다.
"우리도 세금 내고 열심히 일해요. 불법적인 것도 안 하고. 왜 이렇게 손가락질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한 복귀자의 항변이다. 실제로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운영되는 업소들이 대부분이고 종사자들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이다.
마담들에게 에이스의 복귀는 반가운 소식이다. 검증된 실력 안정적인 매출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언니 다시 와줘서 정말 고마워. 자리는 항상 비워뒀어."
"신입 교육시키는 것보다 경력자 한 명이 나아요. 바로 현장 투입 가능하고 실수도 적고."
하지만 대우는 예전만 못한 경우가 많다. "3년 공백이 있잖아요. 조건은 신입이랑 비슷하게 시작해야 해요."
이는 복귀자들에게 상처가 된다. 한때 최고였던 자신이 다시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현실.
"자존심 상하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죠."
복귀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새로운 에이스들과의 경쟁이다. 20대 초반의 젊고 예쁜 신입들은 강력한 경쟁자다.
"나이로는 못 이기죠. 대신 경험과 스킬로 승부해야 해요."
복귀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가족 관계다. 특히 자녀가 있는 경우 더욱 그렇다.
"아이한테 엄마 직업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38살에 이혼 후 생활비를 위해 복귀한 선영 씨의 고민이다. 그녀는 초등학생 딸이 있다.
"나중에 크면 이해해주겠지. 엄마도 먹고살려고 한 일이라고."
일부는 가족의 이해를 받기도 한다. "처음엔 반대했는데 경제적으로 힘든 거 아니까 이제는 아무 말 안 해요. 대신 건강 조심하라고만 하시죠."
복귀 과정에서 정신적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자괴감 우울감 불안감이 밀려온다.
"왜 다시 여기 있나 싶을 때가 있어요. 발전 없는 인생 같아서."
전문가들은 멘탈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신의 선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해요. 후회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는 거죠."
실제로 성공적으로 복귀한 이들은 대부분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어차피 하기로 했으면 즐겁게 하는 거죠. 우울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진정한 에이스의 품격
진정한 에이스는 나이나 외모가 아니라 '프로정신'에서 나온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 동료를 배려하는 마음 일에 대한 책임감.
"젊고 예쁜 애들 많아요. 하지만 진짜 에이스는 따로 있죠. 손님 마음을 읽고 분위기를 만들고 모두를 편하게 하는 능력. 그게 진짜 실력이에요."
복귀한 에이스들은 이런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 단지 녹슬었을 뿐 조금만 닦으면 다시 빛난다.
화류계 종사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하지만 이들도 자신의 노동으로 정당한 대가를 받는 직업인이다.
"손님들 기분 좋게 해드리고 스트레스 풀어드리고. 이것도 중요한 서비스 아닌가요?"
한 복귀자의 말이다. 실제로 많은 손님들이 화류계를 통해 비즈니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여기서 맺은 인연으로 사업 파트너 만나고 결혼하는 사람도 있어요. 단순한 유흥이 아니라 네트워킹 공간이죠."
물론 부정적 측면도 있다. 과도한 음주 불건전한 관계 가정 파괴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어느 업계나 마찬가지다.
새로운 목표와 비전
많은 복귀자들이 두 번째 은퇴를 준비한다. 이번엔 더 철저하게 더 현실적으로.
"첫 번째 은퇴 때는 너무 안일했어요. 이번엔 확실하게 준비하고 나갈 거예요."
일부는 화류계 경험을 살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다.
"나중에 바(bar) 차리고 싶어요. 화류계에서 배운 서비스 노하우를 활용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다른 이들은 후배 양성에 관심을 가진다.
"신입들 교육하면서 보람을 느껴요. 제 경험이 도움이 된다는 게 뿌듯하죠."
다시 날아오르는 그녀들에게
화류계를 떠났다가 돌아온 그녀들. 누군가는 실패자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용기 있는 선택을 한 사람들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고 시도하고 때로는 실패하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 그 과정 자체가 값진 경험이다.
"후회는 없어요. 나가봤으니까 여기가 나한테 맞는지 알게 됐고 이제는 더 현명하게 일할 수 있으니까."
복귀 1년 차 유진 씨의 말이다. 그녀는 이제 강남 최고 매출을 다시 기록하고 있다.
화류계는 분명 쉽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그곳에도 삶이 있고 사람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복귀한 에이스들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나 비난이 아니다.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성인으로서의 존중이다.
"오빠 나 기억 안 나?"라고 묻는 그녀들에게 우리 사회가 "그래 돌아온 걸 환영해"라고 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직업에는 정말 귀천이 없다.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노동으로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 존중받아야 한다.
돌아온 에이스들이여 다시 한번 날개를 펴라. 과거의 영광은 잊고 새로운 시작을 하라. 그리고 이번에는 더 현명하게 더 계획적으로 더 당당하게.
당신들의 선택을 응원한다. 다시 날아오르기를.
